탈린행
출근하려고 나보다 먼저 집을 나서는 마띠한테 인사를 하면서
누가 집주인이고 누가 여행자인지 모르겠는요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ㅋㅋㅋ
서쪽 터미널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거대한 크루즈에 탑승.
배 이름이 슈퍼스타다.
이름 한 번 거하게 유치찬란하다.
배 안에는 레스토랑도 있고 쇼핑몰도 있었다. 다 부질없숴…
잠깐 데크로 나가서 발트해를 바라보는데, 오지게 추워서 금방 들어왔다.
어쩐지 데크에 아무도 없다했어.ㅋㅋ.ㅋ…ㅋ.ㅋ.ㅋ…
터미널에 내려서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또 지도 한 장 받아 들고
유스호스텔 찾아나섰다.
지도 읽는 실력은 여전히 늘지 않았다.
조금만 헷갈리면 방향감각 상실.
탈린 날씨는 헬싱키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내가 묵는 Oldhouse Hostel에 짐을 풀고 탈린 구시가지 탐험에 나섰다.
굳이 1박 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약 세네시간을 여유롭게 걸어 다니면 웬만한 구석구석은 다 본 셈이다.
시청사 건물이 코펜하겐 시청사 건물과 비슷한 모양이다. 오호.
탈린 구시가지는 중세 모습 그대로를 느낄 수 있었다.
어디선가 흑마를 탄 멜 깁슨or클라이브 오웬st. 갑옷 입은 기사가
영주한테 급한 서신을 전달하기 위해 흙탕물을 튀기며
노새를 끌고 가는 농노 및 동네 사람들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면서 달리고
슈렉이 동네 사람들을 놀래 키려고 숲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오고
동네 한 켠 주점에서는 호빗이랑 간달프가 술을 마시고 뛰노는,
실존 인물, 역사적인 사실 및 흐름과는 전혀 관계없는 상상을 하였다.
마띠가 추천해준 구시가지 중심에 Olde Hansa라는 유명한 중세 음식점
....옆 Peppersack이라는 곳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몰라. 여기가 더 끌렸다.
메뉴도 중세st
조명도 중세st.
여기도 중세음식점이다.
인테리어도 중세, 서버들도 중세 복장, 음악은 뭔가 뉴에이지-_-였다.
아주 음침하고 촛불로만 조명을 밝히고
테이블도 테이블보도 의자도 투박하고 단순하다.
수프나 음식 모두 맛이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맛있었던 건 HONEYBEER!
Oh Oh
HONEYBEER
Oh Oh
해리포터에 나온 버터비어가 아니고 허니비어다!
겉으로 보면 그냥 맥주인데, 맛을 보면 달콤하다.
달콤한 맥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상당히 달아서, 벌컥벌컥 마시기보다는 음식 중간중간에 홀짝.
애피타이저에 메인 요리에 허니비어까지 마셨는데 17유로 밖에 나오지 않았다.
덴마크에서도 핀란드에서도 불가능한 일이 에스토니아에서는 가능하다.
저녁을 먹고 나왔지만, 해는 이미 졌지만, 시간은 그래봤자 다섯시-_-
엄마 줄 냉장고 자석을 사고 성벽을 따라 빙 둘러 보았다.
분명히 해가 졌는데, 하늘은 칠흑 같은 어둠이 아니라 검푸르스름한 빛을 띤다.
슈퍼 구경 + 과일 구입을 하기 위해 슈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헬싱키에 비해 물가가 너무 싸다.
에스토니아의 화폐 단위는 Kroon인데, 1유로가 15크룬이다.
나는 약 55크룬, 그러니까 4유로가 좀 안 되는 돈으로 물, 귤, 요구르트, gin 한 병까지 살 수 있었다.
하긴 오늘 하루종일 돌아다니는데 아시안은 코빼기도 안 보였으니...
호스텔로 돌아와서 Common room에 가니
무뚝뚝한 에스토니아 남자애가 앉아있다.
나 체크인을 도와준 호스텔 스탭 남친인가보다.
전반적으로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환상적으로 무뚝뚝했다.
맛있는 gin을 마시면서 인터넷을 하는데 한글이 안 읽힌다. -_-
인터넷이 깔려 있으면 뭐하누…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Common room에 돌아와서 오바마 취임식 CNN 생중계를 봤다.
중계하는데 앵커가 여기 저기 한 일곱 명은 동원된 것 같았다.
앤더슨 쿠퍼 밖에 모르겠숴……………………섹시한 앤더슨 쿠퍼……
Chief Justice가 Oath 버벅거린 거 갖고 어지간히 뭐라고 해라 거참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Split verb인지 뭐시긴지. (기사 링크: http://www.nytimes.com/2009/01/22/opinion/22pinker.html?_r=1&emc=eta1)
덕분에 문법 공부 recap해서 좋긴 좋다만.
내 눈에 들어온 건 미셸 오바마의 연두색 가죽장갑.
미셸 오바마는 앞으로 자기 직장은 그만두는 건가? 그걸 모르겠네.
남편만큼 능력 있는 아내인데 영부인이라는 이유로 내조만 하는 건 재능의 낭비다.
샤워하고 방에 들어가니 나머지 침대 네 개도 모두 짐이 올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 이 호스텔 손님은 죄다 이 방으로 쳐넣은듯-_-
신발과 옷으로 보아하니 죄다 남자다.
난 내일 다시 헬싱키로 돌아가는 새벽 페리를 타야 하는 관계로 일단 쿨쿨쿨
탈린 구시가지의 길 이름들이 너무 단순 간결해서 신기해서 찍었다.
이걸 본 순간 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건 베르디의 아이다가 아니라
경상도 사투리 아이다.
피크와 톨리--만화주인공 이름으로 삼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