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북극이다!!!!!!


...는 뻥이고
비행기에서 바라본 구름밭.
이 빽빽한 구름밭이 침침한 북유럽 날씨의 주범이다
망할놈들 이 밝은 태양을 너네만 즐기고 있었다니  



17


포르투갈 여행 때처럼 새벽 비행기는 아니라 나름 느긋하게 출발.

이상하게 여기서 여행 갈 때는 인천공항 갈 때만큼 설레지 않다.

인천공항만큼 맵시폭풍인 공항이 아니라 그런 것 같암

 

핀에어 AY(번호까먹음) 헬싱키행 탑승!

허접한 아침/간식을 주길래 낼름 받아 먹었다가 반도 안 먹고 남김.

구름 위로 올라오니 눈 쌓인 벌판마냥 구름이 빽빽하게 운집해 있다.

이 자식들. 네 놈들이 침울한 북유럽 날씨의 주범이었군.

해를 제대로 가렸다.

 


1시간 뒤 하늘 위에서 바라본 핀란드 풍경은 덴마크의 그것과 확실히 달랐다.

높이 솟아오른 침엽수림, 넓디 넓은 호수들!

내려서 615번 버스 탑승.

헬싱키 시내로 가는 길은 좀 실망스러웠다.

특색 없는 시가지.

시내 중심부로 가면 좀 달라지려나 싶었는데 중앙역에 내려서 빙 둘러보아도

별반 다를 게 없다.

-_-

 

마띠네 집에 가기 위해 Kamppi 버스터미널로 갔다.

가서 또 버스를 타고 씽씽.

고속도로를 달리고 섬을 건너니까 상당히 멀리 가는 기분이었는데,

15분 정도 달리니까 마띠가 말한 자기 집 근처 쇼핑몰이 눈에 들어온다.

정류장에서 마띠 만남!!

이렇게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내 버디도 아니었는데 여기저기 친구를 잘 심어놓았다……ㅋㅋㅋㅋㅋㅋㅋ



마띠가 사는 곳은 Espoo라고, 분당처럼 헬싱키랑 맞닿아 있는 도시다.

토요일 저녁이라 헬싱키 시내로 나가면 술 취한 인간들이 많다며,

바로 집 옆에 있는 쇼핑몰 지하 슈퍼에 가서 저녁거리를 샀다.

쇼핑몰이 미국 쇼핑몰 스타일로 거대했다.

몰 지하에 슈퍼가 있는데, 이마트 지하 식품 코너 한 두 배 사이즈?

땅덩어리가 넓으니 층을 쌓아올리는 대신 그냥 냅다 넓혀서 지었나보다.
 



마띠가 나 먹으라고 licorice를 샀다……..결국 먹었다…….샹 정말 싫어 이 맛

코펜하겐 대학 오리엔테이션 때도 멋 모르고 집어 먹었다가

혀 끝에 남아있는 맛 없애려고 열심히 맥주를 들이켰더랬지. 

우리나라 김치나 프랑스 치즈가 이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일 듯?

악악악악


고기 손질에 엄청난 열의를 보이고 있는 마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채를 볶고 고기를 익혀 오븐에 한시간을 넘게 구워 roast beef 완성.

주중에는 일하러 가니까 이렇게 요리 할 시간이 없고, 주말엔 요리해 먹는단다.

 

핀란드인 집에는 사우나가 있나요?

네 있습니다!



샤워실 옆에 바로 떡하니 있는 사우나.

난 사우나를 별로 안 좋아해서 우와-하고 말았는데

사우나 정말 좋아하는 사람 e.g. 엄마가 보면 살고 싶어할 집이 아닐까.

 




18

 

일요일 아침 일찍 헬싱키 시내로 나갔다.

중앙역 티켓 오피스가 일요일에도 열었길래

로바니에미에 갈 때 쓸 핀레일패스를 사고 야간열차도 예약했다.

중요한 일을 끝내서 후련했다.

 




지도 한 장 주머니에 찔러 넣고 무작정 걸어 다녔다.

다니다보니 헬싱키 대성당이 나와서 열심히 계단에 올라가서 광장도 내려다보고




좀 더 가다 보니 러시아 정교 교회 우스펜스키 사원도 보였다.

너무 언덕에 있어서 귀찮아서 안 올라갔다.  

 



살짝 얼은 바다



할 게 없어서 일단 수오멘린나 섬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어쩌고저쩌고

러시아 스웨덴 등 외세의 침범에 맞선 요새가 있어서 블라블라

우리나라 강화도 요새랑 비교하면 얼추 들어맞으려나?

네다섯개의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수오멘린나 가는 페리.
핀란드는 스웨덴어를 공용언어로 사용한다.
근데 수오멘린나가 스베아보르라니. 원어와 너무 다르잖아?

여러분들은 우측 하단 제복입은 사내들을 주목합니다.
덴마크 국방부는 촌스러운 야광 카무플라주 군복 대신 핀란드 군복 같은 맵시폭풍 제복을 지급하라 지급하라
훈남들에게는 훈남다운 옷을 입히라 입히라










수오멘린나의 바람은 코펜하겐 뺨치게 세차다.

굴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이런 날에도 관광객은 여전히 많았다.

대포 카메라를 든 외국인 아저씨가 아무도 안 가는 곳에

들어갔다 나왔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길래

그 아저씨 가는 곳으로 따라가면서 그 아저씨가 찍은 곳에서 사진 찍고 ㅋㅋㅋㅋㅋ

하지만 내 카메라는 있는 그대로를 담아낼 뿐................그림같은 풍경 따위 없음 허허허ㅓ ㅓㅓ 




여기 저기 구경하면서 놀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Café Esplanade라는 좋은 카페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먹었는데

마지막에 먹은 티라미수가 장난 아니게 느글느글거려 토하는 줄 알았다.

헬싱키는 코펜하겐보다 해가 조금 더 빨리 넘어가는 것 같다.

해 지면 내 귀소본능은 더 강하게 발동하기 때문에 숙소로 귀가.

속이 너무 안 좋아서 버스 타기 전에 찬바람 쐬며 빙글빙글 돌아다님.

 




19



Major flaw in my itinerary!!

애초에 itinerary가 있지도 않았다만-_-

알고 보니 모든 미술관 박물관은 월요일에 휴관이었다.

일요일인 어제 미술관에 가고 오늘 수오멘린나 섬에 갔어야 했다. 갓댐잇! 

마띠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나랑 놀아 줄 사람도 없고!!! 늦잠 자서 일어나보니 마띠는 이미 가고 없었다.



집에 쳐박혀있기도 뭐하고 일단 시내에 놀러 나가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오늘의 목표는 탈린행 페리 예약으로 정했다. 정말 거창한 목표다.

실야라인 티켓 오피스를 찾아 이리저리 헤메었다.



지도를 너무 못 읽어서 큰일이다.

핀란드는 스웨덴어를 공용으로 쓰기 때문에 스웨덴어로 지명이 표기가 되어있는데,

그래서 맨처음에 멋모르고 스웨덴어 도로 이름 읽고 다니다가

1) 지도 상에 나와 있는 이름은 이 이름이 아니다,

2) 왜 덴마크어랑 비슷하지?

이상하다 싶어 정신차리고 핀란드어 도로 이름을 따라다녔다.


어떨 때는 스웨덴어 공용 표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어줍잖게 덴마크어 주워들은 덕분에 비슷한 단어는 대충 유추해서 알 수 있었다.

 

실야라인 오피스 가서 탈린 행 페리를 예약했다.

핀레일패스가 있어서 50%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행복해. ㅋㅋㅋ

이리저리 구경 다니다가 해가 슬슬 지고 마띠가 퇴근해서 집에 와있겠다 싶을 때 집으로 갔다.


핀란드인들은 덴마크인에 비해 좀 통통한 편인 것 같다.

자전거의 힘인가.

훈남훈녀 비율도 적은 편이고.

이건 마띠가 자기 입으로 그랬다.

뷰티풀 대니쉬 걸즈라며이건 전세계가 인정한듯. 덴마크 훈녀들은 영원히 덴마크 안에만 머물길

 


집에 와서 초인종을 누르는데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마띠가 아직 직장에서 안 돌아왔나 싶어 쇼핑몰 구경하며 시간을 때울까하는 참에 문이 열린다.


텔레비전 안테나를 숨기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

마띠네 집에는 커다란 맥이 있어서 거기에 티비 안테나를 연결해서 보는데,

핀란드에서는 티비가 있으면 국영채널 때문인지 매달인가 매년 꽤 많은 돈을 내야 한단다. 

종종 불심검문 차원에서 tv inspector가 나오는데내가 검사하러 나온 사람인줄 알고 안테나를 숨기느라 시간이 걸렸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핀란드인들은 침묵을 어색해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마띠도 그렇다.  
할 말 없으면 그냥 가만히 있길래 나도 가만히 있었다.



! 어쩌다가 한국에서 체육교실 코치를 하는 스웨덴 친구 얘기가 나오면서,

한국에서는 농구하면 키 큰다는 걸 정말 믿느냐, 어떤 코리안 닥터가 지어낸 말이냐 어쩌고저쩌고

닥쳐. 까도 내가 깐다.

ㅋㅋㅋㅋㅋㅋㅋ







21

 

일찍 일어나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새벽에 한 다섯 번은 깬 것 같다.

벌떡 깨서 시계 보면 12시 반. 3. 3시 20. 4. 5시 45

 




시간 맞춰 일어나 터미널로 향하는 데 밤 사이 폭설이 내렸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걷는데, 보통 때였음 유치하게 이리저리 밟고 뛰어다녔을 테지만

짐꾸러미 들고 옷은 다섯 겹 껴입어 뒤뚱뒤뚱 힘겹게 걷고 있자니 그닥 신나지 않았다.

 

어둡고 텅 빈 새벽녘 탈린 거리를 걷는데

동유럽 남자 두 명이 나보고 헬싱키행 페리 타는 터미널이 어디냐고 묻는다.

 


순간 경계했다.

길에는 아무도 없고!!

나는 얼마 전에 본 영화 Taken이 생각났을 뿐이고!!

우리 아빠는 전직 CIA 요원이 아니라서 납치되면 난 그냥 뿅하고 사라질테고!


하지만 이 애들은 그냥 길치였다

나도 터미널로 간다니까 나를 쭐래쭐래 따라오더니

어느 순간 뒤를 봤더니 다른 길로 갔는지 사라졌다. 

 

이번에는 배 내부 구경하기 귀찮아서 짐도 안 맡기고

카페테리아에서 이것저것 아침거리를 사서 에스토니아 돈을 처리하고

그냥 죽치고 앉아 책을 읽었다.

J D Salinger Franny and Zooey를 읽는데,

Franny 파트는 재밌게 읽었으나 Zooey 파트로 가면서 

무식한 나로서는 도대체 이 책이 뭘 말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종교적인 책인 줄 나는 몰랐네 정말 몰랐네                                        


 

바다를 가르면서 일출을 볼 수 있겠지 싶었으나

나는 잊고 있었다. 내가 북유럽에 있다는 사실을........

구름이 모두 걷히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관계로,

나는 어두컴컴한 밤바다가 약간 푸르딩딩한 하늘로 바뀌는 광경만 볼 수 있었다.  

 



헬싱키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유진이가 있는 Jyväskylä로 향하기 전 여행책자에 나와 있는

일본 식료품 가게를 찾아가 컵라면을 사기로 했다.

이걸 사서 로바니에미에 들고 가서 호텔에 포트를 달라고 부탁해서

컵라면을 끓여 먹음으로써 식비를 조금이나마 아끼겠다는 똘똘한 아이디어!



가는 길에 발견한 동상. 
왼쪽의 저것은 인간인가 고릴라인가?  

눈에 파묻혀서 알 수가 없다.
누가 알아내면 저한테 좀 알려주세요.

그러나 애써 찾아간 일본 식료품 가게는 경제가 침체되어서인지 (내 추측일 뿐)
문이 닫혀있고
문에는 핀란드어로 샬라샬라 써 있는데 무슨 뜻인지 알 턱이 없지.

나름 똑똑한 계획 수포로 돌아가다.

 


그 가게 찾는다고 돌아다니다가 배만 더 고파져서
역으로 돌아가 샌드위치에 커피 사 먹었다.

 


이위베스퀼레로 출발!

가는 길에 침엽수림과 눈에 덮여 호수인지 알 턱이 없지만 얼음낚시 중인 사람들로 보아 호수임이 분명한

풍경을 지나치면서 내가 정말 핀란드에 와 있다는 걸 느꼈다. Hyvä!!

 


이위베스퀼레 역에 도착하니 유진이가 친히 마중 나와있었다.

유진이가 자기 살쪘다고 어쩌고저쩌고하더니

오히려 맑은 핀란드 공기 마셔서 그런지 예뻐졌다. 짜식. ㅋㅋㅋㅋㅋㅋㅋ 




유진이가 동네 구경 도서관 구경도 시켜줬다.


버디 시절 계속 들어보았던 이위베스퀼레에 내가 오게 될 줄이야!

참 나. 2005년 가을 라우리랑 마띠가 왔을 때
도대체 쟤네 대학이름 발음은 들어도 들어도 따라하기 어렵다며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여기 오니 헬싱키에 비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신호도 없고 자전거 도로도 없고 아무렇게나 눈밭에서 타는 게 더 편해 보였다.


약 세네 시간 유진이와 동네 구경하고 시간 때우고,

어느새 헤어져야 할 시간!

작별 인사하는데 괜히 찡했다. 유진아 한국에서 보아 <3



 



탐페레에서 한 시간을 보낸 뒤 로바니에미 행 야간열차로 갈아탔다.

탐페레도 구경하면 좋았겠지만 짐을 낑낑 들고 밤거리를 돌아다닐 여력이 없었다.

탐페레: 이름이 너무 예쁘다.

핀란드 사람들은 땀페레-에 가깝게 발음하고 살짝 끝을 내리는데,

그 억양이 이유 없이 너무 맘에 든다.


 

로바니에미 행 야간열차는 악몽 그 자체였다.

! ! ! !!!!!!!!!!!!!!!!!!

여기서 얻은 교훈: 쓸데없는 데 돈 아끼지 말자.

야간열차 예약할 때 돈 아낀답시고 침대칸 대신 그냥 좌석으로 예약했었다.

처음 탔을 때는 다 괜찮았다.

뒤로 눕힐 수 있는 좌석이고, 의자도 널찍하고, 사람들도 별로 없고.

양치질도 하고 신발도 벗고 파카를 이불 삼아 덮고 눈을 꼭 감고 잘 준비를 했다.


...
나는 야간열차면 좌석 칸도 불을 꺼줄 줄 알았다.

이게 웬걸.

대낮처럼 형광등을 쨍하게 켜놓은 채로 기차는 내내 그렇게 달렸다.

철도가 고르지 못한 건지 기차가 낡아서 그런 건지 차체가 심하게 덜컹거린다.

중간 역에서 몇 명이 타더니 맥주를 마시면서 웃고 떠들기 시작한다.

어떤 인간이 심하게 코를 골기 시작한다.

이렇게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를 뚫고 칸 전체에 울려 퍼지는

코고는 소리는 내 23년 인생 살면서 처음이다. 코골이 수술 강력추천.

밝고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 웬만해서 머리 눕힐 곳만 있으면 잘 자는데 이건 아니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금 생각해도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사방으로 하이킥을 날리고 싶은 심정. 






 


22일


아침에 로바니에미 역에 내리자마자 매표소로 달려가
헬싱키 행 야간열차 예약을 침대 칸으로 바꿨다.

로바니에미 시내로 가는 길은 역시 텅 비어 있었다.

과연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출근길 지옥이라는 게 존재할까? -_-

 


아침이라 체크인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쌓였다.

어쨌든 호텔로 들어가서 짐을 맡겨야겠다 싶어 들어가니 이게 웬걸! 체크인이 가능하단다.


방에 들어갔는데 매우 귀여운 사슴 인형이 침대 위에 놓여져 있다.

호텔이 참 센스 있는 기념품을 준비하였다고 생각하며

귀에 붙은 씨티호텔 태그 뒷면을 확인하는 순간
적혀 있는 가격 18유로 + 리셉션에서 구입 가능하다는 친절한 안내문. -_-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엄마 전화에 깨니까 오후 세시.

오전 아홉시든 오후 세시이든 여전히 어두운 걸 보니, 나 라플란드 온 거 맞구나.

 



저녁 먹으러 밖에 나갔다가 서브웨이 발견!

다른 거 다 필요 없어 서브웨이면 돼!!


샌드위치 사 들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티비 보면서 쉬었다.

CNN에서는 중국 멜라민 파동 관계자들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는 기사가 연신 나왔다.

이리저리 채널 돌리는데 여기는 미국 프로그램을 참 많이 해준다.

KBS에서 CSI나 프렌즈 틀어주면 이상할 것 같은데...

 

 



 

23

 

눈을 떠보니 아홉시가 넘었다.

아침!!!

아침!!!!!!

아침 먹어야 한다!!!!

 

아침 부페에 연어가 있어서 쌩뚱맞았다. 쌩뚱맞아도 다 먹었다. 킄킄킄

 


체크아웃 후 짐을 맡기고 arctic circle로 데려다 줄 8번 버스를 기다렸다.

한 시간 간격으로 오는 버스라 시간이 많이 남아 시내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어디선가 시끄러운 마이크 소리가 들려 가보니
Arctic Lapland Rally 행사가 한참이다.

이쪽 대회 중에서는 상당히 큰 경주인가보다.

이 추운 날씨에 눈밭을 달리는 경주라...수고하슈.

 


마침내 도착한 8번 버스를 타고 산타마을로 향했다.

내가 가서 뭘 보겠다고 북극권으로 가는 건지-_-?

순간 의문이 들었다.

내 몸 속에 잠자고 있던 귀차니즘이 다시 꿈틀꿈틀.


북극권이다, 이건가.

근데 북극에 가면 뭐가 있다고 북극에 가는 거지?

아문센이 들으면 뭐시라! 하며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겠군.

어쨌든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으므로 간다!

어디 저 멀리 북극권 핵심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꼴랑 북극권 경계에 걸쳐져 있는 산타마을 보러 가면서 속으로 이렇게 궁시렁궁시렁.

 





산타마을 도착!


위를 가로지르는 선이 arctic circle 경계선이다.




산타를 만나기 위해 visitors card를 발급받고 들어가서 기다렸다.

방문자 카드를 주길래 정말 이거 뭐 접견하려면 공식절차를 거쳐야하나 싶었다.
이런 생각을 잠깐이나마 했다는 건 내가 아직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다는 뜻? 호호호호ㅗ호호호호호홓


가는 길은 꽤 그럴싸하게 Santa
s workshop 모양새 나게 꾸며놓았다.

음향효과로 삐그덕삐그덕 톱니바퀴 소리도 나고!

유리판대기 깔아서 빙하바닥도 만들어놓고!



20
대 한국인 여성이 혼자 산타 보러 이런 유치한 통로를 지나려니

너무 웃겨서 혼자 허허허허하고 웃어버렸다.

내가 10년 전 산타클로스 믿던 시절  

엄마아빠 손잡고 왔었더라면 오우우우와했을텐데.

10년만 젊었어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산타는 미국인인가? 발음이 상당히 유창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 한국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그냥 서울이라고 그랬더니, 강북 area냐 강남 area냐고 묻는다.

강남 쪽이라 그랬더니 교보 빌딩 근처냐 코엑스 근처냐고 묻는다.


산타 할아버지... 나라 관련 대사 치느라 어지간히 힘들 듯.

강북이라 그랬으면 명동이나 세종 문화 센터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중간에 사진도 한 방 찍는다.

이렇게 유치한 만남이 끝나고 방을 나오는 데 나도 모르는 새 내 손에는 20유로짜리

산타와 함께 찍은 대형 사진이 들려있었다..  한국가면 보여줄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산타클로스는 시장자본주의자인가? 산타는 돈에 환장한 놈이 분명하다.

그의 office는 물론이고 주변은 죄다 기념품 가게에 레스토랑이다.

동심을 짓밟는 할배 같으니라고.


 
이 곳에서 다시 한 번 서울의 무존재감을 느끼다.







산타를 만나고 카페에서 커피에 빵 조각을 먹고

산타클로스 우체국도 구경하고 기념품도 구경해도 시간이 안 지나간다.

로바니에미 시내에는 더더욱 할 게 없고.

 

조금만 벗어나니 숲이 빽뺵하게 펼쳐져 있길래 숲 속 탐험에 나섰다.




눈이 많이 와 발이 푹푹 빠진다.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호수고 어디가 풀밭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내가 길을 만들었다. 음하하.





어느 정도 걸어 들어가니 적막한 숲 속에 나 혼자 뿐이었다.

중간에 호수와 오두막집이 나타났다면 Los Amantes del Círculo Polar의 한 장면 같았을 텐데!

그러고 보니 이 영화, 로바니에미와 이 근교에서 촬영했다고 들었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또 방향감각 상실할까봐 잽싸게 산타마을 쪽으로 되돌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발자국 되돌아가면 되는 건데, 그냥 그 적막함이 무서웠던 것 같다.



 

버스를 타고 로바니에미로 되돌아 와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헬싱키 행 야간열차를 타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렇게 두 줄로 압축될 수 있는 시간이라니 참 허무하다.

기차 타기 전까지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다.

너무 할 일이 없는 거다!

그닥 특징 없는 시내 중심가는 10분이면 다 둘러 보고,

책도 다 읽고 내 주변에 있는 온갖 활자란 활자는 다 읽었는데도 시간이 좀처럼 가지 않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할 수도 없고 이거 원 참.

 


로바니에미도 그렇고 헬싱키도 그렇고,

핀란드에 있는 내내 일본인 관광객들을 참 많이 보았다.

중국인 관광객은 인구로 따져보았을 때 전세계 어디서든 볼 확률이 높지만

핀란드에서 일본인이라...?

핀란드 철도 사이트에 일본어 페이지가 따로 있는 걸 보아하니 핀란드랑 일본이랑 좀 친한가 보다.

 


밍크 시체를 주렁주렁 매단 러시아 할머니들 단체 관광객들과 함께
야간열차 마침내 탑승!

진작에 침대칸으로 탈 걸 그랬다.

매표소 아저씨가 2층 침대로 예약해줘서 더 널찍하고 좋았다.



아래칸에는 탐페레로 가는 핀란드인 할머니가 탔다.

Conductor와 이야기를 하는데 탐페레 어쩌고 저쩌고하면서아저씨가 할머니 침대 옆에 알람시계 맞춰주는걸 보고

눈치로 탐페레에서 내린다는 걸 알았다.

 



식당칸에 가서 gin 한 잔을 마시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푹 잘 잤다.





 

핀란드에서의 마지막 날!

개운하게 일어나 8 37 중앙역에 도착.


락커에 짐을 넣어두고 마켓 광장에 갔다가 그 규모에 실망하고


내가 라플란드에 다녀온 사이 헬싱키 대성당 앞 계단을 뒤덮어버린 눈에 놀랐다.

선진국답게 눈이 오면 째깍째깍 치울 줄 알았는데,
여기는 눈이 한 번 오면 엄청나게 오니까 그냥 치울 의지를 상실하나보다.
차도고 보행자 도로고 할 거 없이 질퍽질퍽.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와 크ㅎ와상을 먹고 마지막 헬싱키 탐험에 나섰다.



아무리 볼 거 없는 도시라고 해도 맘만 먹으면 볼 게 생긴다.

오늘은 가기 전에 못 본 미술관 박물관 교회 등을 구경하기로 했다.



시내 중심에 멋지게 자리한 아테네움 박물관.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이 주어진 나라답게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활동도 활발. 
특별 전시회로 일본 초기 사진 작가들의 흑백사진 전시회가 있었다. 



좀 멋있는 국회의사당. 청렴도 1위.
남녀 평등에 청렴한 정치인에 똑똑한 국민들에...도대체 못난게 없는 좀 부러운 핀란드. 
20세기 초까지 외침에 시달린 역사는 우리랑 상당히 비슷한데 우린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은 격투장인데 흑흑흑 

국회의사당에서 좀 더 걸어가보았다. 


조용한 헬싱키 동네를 지나가면 나타나는 암반-_-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다. 
지붕 위 아주 조그만 십자가 만이 교회임을 나타내준다. 



암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잘 살린 아름다운 내부. 
음악 감상하고 나왔다. 

키아스마 현대 미술관으로 갔다. 
주요 볼거리가 죄다 도보 10분 거리에 몰려 있는 헬싱키. 
키아스마에서는 현재 활발한 활동 중인 한중일 작가 작품들을 모은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박준범 작가의 2006년 작 Occupation.
사람들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나는 GS25가 반가워서 바라본다. 

tkarkrrlaqkq ajrrh tlvdj............................



요코 오노의 작품.  




키아스마 중앙에 커다랗게 걸린 작품은 서도호 작가의 것!!!
현대미술사 레포트로 서도호 작가의 전시회 감상문을 써냈었는데.....
하튼 엄청난 헛소리를 썼다는 것 밖에 기억이 안 남
그리고 나는 학점포기를 했다







마지막 날이라고 이것저것 사고 또 이것저것 먹느라
카드를 몇십번은 긁은 듯.

아라비아 무민 머그컵이랑 아리카 장식품 다 싹쓸이해오고 싶었다.

다음 달 카드값 빠지면 난 정말 파산!

난 유로화가 밉다! 코펜하겐 물가는 헬싱키의 새발의 피였다!




오자마자 일기 다 썼다
힘들어 죽겠다
오기로 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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