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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날 리스본 마지막 밤은 다른 호스텔에 예약을 해놓은 상태였는데,
Traveller's House가 좋고 편해서 그 곳을 취소하고 28일도 여기로 오기로 했다.

친절한 스탭들♥
말도 잘 통하고 애들이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_-) 귀엽다.
 
호스텔에서 일하는 애들보면 물질적인 욕구에는 관심이 없고
정말 인생 즐기면서 흘러가는대로, 한량처럼 여행하고,
다른 여행자들 만나고 돕는 낙으로 즐겁게 사는 것 같다.
배낭여행하다보면 이런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넓어지고 다시 한 번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체크아웃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2008년 리스본의 오전 풍경. 
1908년에도 이 모습 그대로였을 것 같다.  



광장 앞 카페 Suiça에서 또 나따와 에스프레소를 먹고.ㅋㅋㅋㅋ

포르투로 갈 버스를 타려고 터미널로 갔다.
동행은 호스텔에서 만난 주리언니와 소연언니.
다들 일정이 제각각인데, 묘하게 포르투 출발하는 일정이 다 같아서 함께 했다.



↑내 앞에 있었던 속눈썹 컬링 제대로였던 남자애-_-
포르투로 가는 고속버스에는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자리는 좁고, 출발 10분전에 좌석을 사서 맨 뒷자리라
멀미할까봐 걱정했는데 아주 잘 자고 잘 먹고 잘 갔다.

난 역시 외국 체질인가
...차멀미도 뱅기 멀미도 외국에서는 안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포르투에 가까워 지면서 하늘에 구름이 가득했다.
세시간 반 동안 달려 갔더니 포르투는 음침하고 쌀쌀하다.
3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이렇게 날씨가 다를 수 있나?



골목길은 한국 달동네 수준으로 가파르고 험난한데,
리스본  구시가지 알파마 지구를 한 세배로 불려놓은 것 같았다.





다른 호스텔에 예약한 주리 언니와 조금 있다 만나기로 하고
나와 소연언니는 Oporto Poets Hostel을 찾아 갔다.

도저히 못 찾겠다 싶어서 길 가던 아줌마 한 명한테 물어봤더니
그 아줌마가 다른 할아버지를 붙잡고 물어보고 그 할아버지가 골목길로 우리를 안내하더니 다른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한테 물어보고 그 할머니가 우리를 데리고 그 길을 알려주는데 지나가던 청년이 우리를 지켜보다가 다시 헤매니까 멀리서 알려주고 마침내 호스텔을 찾았는데 처음에 만났던 그 할아버지가 우리가 잘 들어가나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만 더 헤매었으면 동네 사람 전부 다 나설 뻔 했다. ㅋㅋㅋㅋㅋㅋㅋ

 



호스텔 리셉션 애한테 포르투 호스텔들은 다 이렇게 산기슭 구석탱이에 쳐박혀 있냐고 물었더니 
껄껄 웃으면서 그렇다고 한다. 산에 지어진 도시다.
 

짐을 대충 풀어놓고 주리언니와 합류하려고 길 따라
상 벤또 역 쪽 광장으로 내려가는데 뒤에서 어떤 남자애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하 그 아이가 붙잡고 우리에게 한 헛소리:
음 너희들의 대화를 방해해서 미안해 내 얘기를 잠깐 들어주겠니 나는 리스보아에서 왔는데 우리 부모님이 이제 나를 더 이상 돌보지 않기로 했어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꺼고 나는 이제 내 삶을 찾아야 돼 나는 아티스트야 음악을 만들고 음악을 자주 감상해 나는 얼굴도 반반하고 옷도 잘 입는데 지금 돈이 없어서 5유로를 모으려고 해 나 5유로 모으는데 조금만 보태지 않겠니?


 

그냥 구걸을 하기 위해 우리를 붙잡고 이 청년은 한 3분 동안 헛소리를 했다

포르투......첫인상부터 너무 어두침침한데 인상이 갈수록 안 좋아진다.



주리언니와 만나서 Bonjardim 거리로 갔다
이 거리에 포르투 서민들이 즐겨 찾는 식당 몇 군데가 여행책에 소개되어 있다.




Lameiras 였나? 하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우리나라 동네 국밥집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친근한 내부.
인테리어에 전혀 신경쓰지 않은 듯한 테이블, 의자, 메뉴, 천장 한 켠에 달려있는 티비마저 모두 친근했다.



야채 수프 + 무슨 그레이비소스 같은 소스를 뿌린 감자와 로스트 비프
+
포트 와인 반 병을 6유로에 배부르게 먹었다.
아이 러브 포르투갈...



 

가는 길에 과일 가게에 들러 사과를 몇 개 사는데
가게 밖에서 어떤 남자애 둘이서 아리가또 니하오 이러면서 간다. 뭥미-_-

두오로 강변으로 향하는데 지도를 봐도 길을 전혀 몰라 밤길을 걷다가
우리도 모르는 새 매우 음침하고 위험해 보이는 골목길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까 우리보고 니하오 아리가또하던 남자애 둘이 뒤에서 또 인사를 한다.
언니 둘은 무시하고 가는데, 나는 무모했던 건지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건지,
별로 해를 끼칠 것 같은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아리가또 니하오 아니고
한국인인데 다리 보러 가려고 한다. 어디로 가야하남?
이러고 말을 걸었다.


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골목길을 빠져 나와 다시 큰길에 들어섰는데,
얘네들이 우리가 방금 지나온 길이 마약 중독자들도 많고 위험한 곳이라고 일러준다.

같이 산책하자고 치근덕거리던 포르투 건축학과 학생들
...그래도 덕분에 그 길을 잘 빠져 나왔다.



음침해보이는 골목길. 저기에서 drug junkie라도 마주쳤다면 ㄷㄷㄷ 





 

다리에 오르긴 했는데 강 건너 가이아 지역은 너무 어두컴컴하고 날씨는 점점 추워진다.
주리언니, 소연언니와 밤길을 둘러보는데 왜 이렇게 조용한지 모르겠다.








지도 펼쳐보고 있는데 어떤 미친년이 우리 놀래킨다고 소리를 꺅 질러서 기분 잡쳤다.
뒤에다 대고 미친년 웃기냐 재밌냐 이러고 소리를 지르긴 했는데 그래도 분을 삭히지 못했다.
포르투...좀 정신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듯. ㅋㅋㅋㅋㅋㅋ

주리언니와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냉골.
조명이 너무 음침하고 숙소가 전체적으로 춥다
하지만 산기슭에 있다 보니 전망이 끝내준다.
담요에 이불까지 덮고 푹 잘 잤지만, 벽에 등을 기대면 냉장고에 들어간 기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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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슈슈슝 내려간다.
이런 길 따라 마을버스가 잘도 다닌다.

날씨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아침을 먹고 소연언니와 두오로 강변으로 갔다.
가는 길에 그 전날 우리가 들어갔던 골목길을 지났는데, 낮에 보니 하나도 안 위험해 보인다.


그 골목길로 들어가지 않고 조금만 더 내려가면 강가가 나타난다.




건물에 웬 여자의 나체가-_-



비가 후두두두두둑 내린다.

허허 날씨 한 번 거참 코펜하겐스럽군!   

이제 익숙한 날씨지만 포르투갈에서 이런 날씨와 맞닥뜨릴 줄이야. _







강가를 따라 폰테 베키오에서 본듯한 오래된 건물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몇백년 된 건물들일까? 유네스코 문화 유산 지정 구역이라 정말 아주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래도 깨진 유리창은 좀 갈지...-_-



강가 건너 가이아 지역에 있는 와이너리들. 영국 회사가 대거 들어와 있다.
샌드맨, 크로프트 등등등


 



소연언니와도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Guimar
ães행 기차표를 끊었다.
기마라이쉬는 포르투갈 왕조가 시작된 곳이고, 10세기에 지어진 성이 아직도 있다고 한다.
날씨 때문에 우울해져서
귀찮아서 안 가려고 하다가
포르투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가보기로 했다.




아름다운 상 벤토 역 내부.
여기도 Azulejo 장식이 화려하다.



또 나따와 에스프레소 한 잔을 하며 기차를 기다렸다.
흠....
이 나따가 그 나따가 아니여... 파스테이쉬 드 벨렝의 나따가 제대로인데!
아 입에 침이 고인다.



 

한시간 정도 열차를 타고 기마라이쉬에 도착했다.

15세기 때부터 시작된 매년 여름에 열리는 축제가 유명하다던데,

그래서 그런지 역 앞에는 호텔 체인 몇 곳도 보였다.

시내를 걷는데 사람들이 없다.

도대체 다 뭐하나요-_-...크리스마스 휴가에는 집 밖으로 나오지를 않으시나요...

 

포르투갈에서 한 가지 느낀 점은

사람들이 아주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나를 쳐다본다는 것이었다.

아시아권 여행자들도 꽤 많던데, 그래도 아직 동양인의 얼굴은 생소한가 보다.

아니면 내가 정말정말정말 신기하게 생겼거나........

기마라이쉬에서도 동네 아줌마 아저씨 처녀 총각들이
나 혼자 씩씩하게 걸어 다니는데 옆에서 뚫어져라 쳐다봐서 민망했다.

 


기마라이쉬 시내 중간 성벽에 떡하니 써있는 글귀.
여기에서 포르투갈이 탄생했다---? 뭐 그런 뜻.


기마라이쉬의 건물들은 전반적으로 베이지색, 오트밀 색깔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한 톤 가라 앉은 느낌이었다

사람들도 차들도 잘 없다보니,
성 따라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면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몇 백년 된 건물이 그냥 이렇게 아직도 무심하게 서 있다니.  

 


기마라이쉬 성 올라가는 길에 있던 수도원 벽의 azulejo 장식.


카스텔로 드 기마라이쉬 가는 길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가파른 경사 언덕길이었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헥헥거리며 올라가는데

왜 나와 아무 관련도 없는 포르투갈 왕조의 성을 보겠다며 이 고생을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너무 웃겨서 실실 웃으면서 걸어 올라갔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 혼자 성 안을 누볐는데,

성에서는 어느 한 켠에서 중세 기사가 coat of arms 깃발을 들고 나타날 것 같았다.

문득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타임라인이 떠올랐다. 영화도 재밌었는데 그 소설..



 

기마라이쉬에서 포르투로 돌아와서
Serralves
공원까지 가보려고 했는데 이미 해는 넘어갔고 비는 엄청 오고,
치즈랑 토마토 사먹으려고 했는데 슈퍼는 안 보이고!!!

가는 길에 FNAC이 보이길래 들어가서 영어 책 두 권을 샀다.
가격이 어찌되었든 덴마크 보다는 싸다는 걸 알기에. ㅋㅋㅋ

슈퍼 결국 못 찾고 맥도날드로 들어갔다. 1주일 동안 맥도날드를 두 번이나 먹다니.
상하이 스파이스 치킨 버거도 없는 유럽 맥도날드는 이제 싫어! 싫어!!
해피밀을 먹을까 하다가 그 박스에 담아주는게 조금 쪽팔려서 관뒀다. ㅋㅋㅋ

포르투 맥도날드내부는 매우 고급스럽고 널찍하게 꾸며져 있었는데,
카운터를 가리고 보면 아르누보식 까페라고 해도 믿을 법했다.

 




다시 추운 숙소로 돌아와 이불로 꽁꽁 싸매고 책을 읽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방이 참 어두컴컴하다. ㅋㅋㅋㅋ



소연언니는 떠나고 도미토리 침대 여섯개가 다 찼는데, 나 빼고 죄다 아저씨들이었다.

퀘벡에서 온 아저씨
뉴질랜드에서 온 아저씨
일본에서 온 건축가 아저씨
독일에서 온 아저씨
... 차라리 나랑 동갑이면 말이라도 통하지...음 재미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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